헌릉을 산책하며

지난 일요일 가을장마가 오래간 만에 멈춘 틈을 타 점심 후 헌릉을 찾았다 . 식구 셋이 오래간 만에 같이 산책을 하기로 마음이 모였다 . 서울 안에서도 이렇게 고요한 숲이 남아 있다 . 입구를 지나니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이 바닥에 부드럽게 쌓여 있었다 .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따뜻하고 , 공기는 상쾌하게 맑았다 . 능으로 오르는 가는 길은 나무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. 길옆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오래된 향기를 품고 서 있었고 , 그 아래를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.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다가 , 어느 순간엔 완전히 사라졌다 . 대신 바람 소리만 고요하게 남았다 . 그 정적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. 우리 외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산책을 나왔다 . 헌릉 앞에 다다르자 , 넓게 펼쳐진 봉분은 위엄이 있어 보였다 . 태종과 원경왕후가 잠든 그 자리는 단정하면서도 장엄했다 . 우리는 능 앞을 지나 우회 산책로를 따라 능 뒤쪽으로 걸었다 . 앞 쪽이나 측면은 능으로 접근하는 길이 없었다 . 오래 전 기억으로는 측면으로 길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. 내려오면서 보니 능으로 난 길이 있어 올라가 보았다 , 전망이 확 터여 마음까지 편안하였다 . 이곳을 묵묵히 지킨 돌사자와 문인석들도 충성스러워 보였다 . 워낙 시진 찍기를 무서워하는 우리 가족들이라 나만 헌릉을 배경을 기록을 남겼다 . 돌아 나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로 단풍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.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우리 어깨 위로 떨어졌다 . 그 순간 ,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.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 대신 , 지금 숨 쉬는 이 순간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.